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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사랑

빛이신 하나님: 요한 일서 읽기 1

 

 

빛이신 하나님: 요한 일서 읽기 1

written by Rev. 최현호

들어가는 말

소단락의 구분과 그 제목에 있어서는 공예배 시간에 주로 한글 개역개정4판 성경을 사용하기 때문에 개역개정4판 성경 본문에서 사용한 단락 구분과 명칭을 우선적으로 따랐다. 이 글에는 요한 일서의 각 구절들이 모두 제시되어 있는데, 구절들에 있어서는 개역개정4판의 번역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묵상과 이해를 돕기 위하여 헬라어(그리스어) 성경 본문의 어순과 배열이 본문 이해에 조금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헬라어 본문의 어순과 배열에 가깝게 개역개정4판 성경의 번역 단어와 배열을 재구성해보기도 했다.

요한 일서를 구성하는 단어들과 그 내용은 매우 관념적이라고 느껴진다. 따라서 본문이 어떤 구체적인 실천사항이나 적용점들을 제시하기 보다는 기독교 신앙의 사상과 지향점들을 논거하고 있다고 보여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대해 기초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의 경우에는 요한 일서가 ‘이미 다 아는 얘기들을, 혹은 맞는 얘기들을 계속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지루하게 느껴지기가 쉬울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본문의 주안점들을 살펴나가되, 현재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포인트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배려하게 되었다.

 

Chapter 1 요한일서 1장 - 2장 17절

#1 생명의 말씀 (1장 1절-4절)

A. 본문 읽기와 읽기 도우미

1절 - 그것이 태초부터 있다.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우리가 들었고, 눈으로 보았고, 자세히 보았고, 우리의 손으로 만졌다.

▶ ‘보았고’의 반복을 통해 사도 요한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드러난다. 지금부터 말하고자하는 생명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편지 내용에 담긴 진실성을 나타내고 있다.

2절 - 이 생명이 나타났다.

이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이 생명은 우리에게 나타난 분이시다.

영원한 이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한다.

▶ 이 생명이 나타났음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1절과 더불어 지금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실재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는 설명을 통해 이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3절 -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한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쓴 목적이 드러나고 있다. 곧 이 편지를 읽는 이들과의 사귐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사귐은 한국어가 표면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순한 교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깊고 다양한 신학적 의미들을 담고 있는 것 같다. 3절의 세 번째 행에서 부연 설명되고 있듯이,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신앙을 키워나가는 것 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단에 빠지지 않는 것, 서로간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는 구제, 성령 안에서 평안을 누림, 서로의 허물을 품고 중보함, 자신이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 등이 있을 수 있다.

4절 -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것을 쓴다.

▶ 3절에서 사도 요한이 의도한 편지의 목적을 다른 표현으로 더욱 강조하고 있다.

B. 적용과 해설

본문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1․2절에서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방식은 자기 경험에서 근거한 고백적이며, 선포적인 것이다. “보았다, 만졌다, 나타났다.” 이러한 진술들은 점점 현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를 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의 태도와 대조된다. 캠퍼스와 직장에 많은 기독교 동아리와 신우회가 존재하지만, 노방찬양이나 노방전도와 같이 ‘익명성’에 의한 용기를 제외하고는 개인적인 관계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증거는 미미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3절의 사귐이 내포하고 있는 깊은 신학적 의미들은 사라진 채 표면적인 ‘교제’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종교적 행위를 할 때만 크리스천으로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내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고백하고 선포하며 더 깊은 사귐의 길로 나아가는가에 대한 싸움이 우리 앞에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