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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사랑

마이너리그에 찾아오신 하나님: 룻기 읽기 4

 

마이너리그에 찾아오신 하나님: 룻기 읽기 4 

written by Rev. 최현호

 

낮아짐: 세상과 다른 선택

룻기 3:7-11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 돌싱녀의 프로포즈: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캔디와 키다리 아저씨의 로맨스는 진도가 나간다. 룻은 보아스가 자신의 가정의 기업 무를 자임을 안 후에, 그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타이밍을 기다린다. 본문에 나타나는 룻의 행동은 사뭇 대범하다. 돌싱녀 룻은 적극적으로 보아스에게 대시한다.

둘만 있을 수 있는 시간, 공간을 기다려 룻은 보아스와 자신의 친족관계를 설명한다. 보아스가 그녀의 가정의 기업무를 자임을 알려준다.

엘리멜렉 가정의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돌싱녀 룻을 아내로 맞이하고, 그녀와 그녀의 시어머니를 부양하며 룻에게서 낳을 아들이 엘리멜렉의 이름으로 그 땅을 이어받게 하는 것이다. 이 조건은 보아스에게 있어서는 손해이며 희생을 요구하는 일.

인디언의 말 중에 ‘친구’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룻이 보아스에게 한 말은 ‘당신이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줄 수 있습니까?“라는 내용과 같다. 보아스가 그 슬픔을 짊어지려고 할 때, 룻의 슬픔은 보아스의 것이 되며, 보아스의 것은 룻의 것이 되는 것이다.

보아스에게는 이러한 선택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룻의 슬픔을, 나오미의 슬픔을 등에 질 수 있는가? 여기서 이야기는 1장에서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의 절망을 함께 지고 베들레헴으로 향했던 장면과 평행을 이룬다.

룻과 보아스의 삶의 평행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준다. 그것은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는 이들의 삶의 성격을 갖는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등에 지고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 누구를 위해 내 삶을 나눠줄 것인가?

세상은 ‘무엇보다 소중한 나’를 들어 억압된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하라고 캣치 프레이즈를 내건다. 웰빙은 자기 만족과 자기애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내 것을 포기하고, 나를 나눠주는 것이다.

차인표 신애라 가정의 입양. 경제적인 능력이 되기 때문에 입양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척 단순한 생각이다. 입양은 경제적인 조건 말고도 섬세한 정신적 희생이 요구된다.

보아스는 자신이 기업무를자가 됨을 인정. 그러나 절차상 기업무름의 우선순위에 있는 남자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기로 한다.

 

2. 엘리멜렉 기업의 회복

룻기 4:3-10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우선순위에 있는 자가 희생을 거부. 결국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 가정의 기업을 무르는 자가 됨. 베들레헴은 비전이 없는 땅에서 다시 비전이 보이는 땅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베들레헴에서 보아스와의 만남은 그들의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음이 확실해졌다.

보아스는 세상과 다른 선택을 한다. 그는 룻과 나오미를 받아들이기 위해 낮아지기로 했다. 더 낮은 자리로 가려했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지고, 그들을 위해 눈높이를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또 하나의 가족을 맞이한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땅, 모압으로 이주한지 10년만에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엘리멜렉의 가정은 이제 그들의 삶의 주관자가 누구인지를 똑똑히 경험할 수 있엇다. 그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었다. 그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여인 룻을 선택하셔서 엘리멜렉 가정을 회복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을 섬기는 땅으로 돌아왔을 때, 룻의 본래 정체성이 이방여인이라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이방여인은 누구보다 환대를 받았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하나님 앞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나를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시다는 점이다. 당신의 삶의 주관자가 누구인지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라. 주일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도록 노력하라.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공동체를 지켜라.

하나님은 당신을 환대하신다. 당신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를 회복시키시길 원하신다. 내 문제가 지금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얽매여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해결되지 않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