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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사랑

빛이신 하나님: 요한 일서 읽기 3

 

 

 

 

빛이신 하나님: 요한 일서 읽기 3

written by Rev. 최현호

 

#3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2장 1절-6절)

A. 본문 읽기와 읽기 도우미

1절 -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쓴다

만약에 누군가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아버지 앞에서 대언자,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다.

▶ 1장의 서론적 전개로부터 2장은 보다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고 있다. 1장 7절에서 언급했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피에 대한 진술이 시작된다. 그 구체적인 표현은 바로 ‘대언자’라는 개념이다. 앞서 1장에서 우리가 매일 범죄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확인했었는데,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절 - 그리고 그는 스스로 우리의 죄에 대하여 화목 제물이시다.

우리에 대해서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제물이 되셨다.

그 화목이 미치는 범위는 성도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온 세상의 회복과 온전케됨을 바라보게 한다.

 

3절 - 만약 그의 계명을 우리가 지키면,

이것으로 우리가 그를 알았음을 알 것이다.

▶ 3절에 있어 헬라어 성경의 배열은 다소 복잡하게 되어 있다. 3절을 쉽게 풀이하자면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명령)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증거라는 뜻이다.

 

4절 - 그를 안다고 말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이다.

그리고 그 안에 진리가 있지 않다.

▶ 4절은 기본적으로 3절과 같은 의미이지만, 3절을 부연 설명하며 그 의미를 더욱 깊게 끌고 나간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의 안에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5절 - 만일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이것으로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완전케 될 것이며,

이것으로 우리가 그 안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 것이다.

▶ 3절에서 시작된 논의가 점차 발전되고 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완전케 될 것’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한다. ‘이것으로’가 의미하는 것은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6절 - 그 안에 있다고 말하는 자는

그가 행했던 것처럼

반드시 그 스스로 행해야 한다.

▶ 첫 번째 행과 두 번째 행의 ‘그’가 지칭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세 번째 행의 ‘그’가 지칭하는 것은 ‘그 안에 있다고 말하는 자’이다. 6절은 3절에서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계명(명령)을 지키는 것에 대한 논의를 일단락 짓고 있다.

 

B. 적용과 해설

2장 1절에서 6절까지의 내용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계명(명령)을 행함’이 본문의 중심으로 읽혀지기 쉽지만,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단락임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 행함의 논리가 등장한 이유는 우리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있느냐는 물음 때문이다.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고, 우리를 위해서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 본문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포스트 모던 세대가 등장하면서, 젊은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지만 여전히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피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인식하는 젊은이들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영적인 현상(기적과 방언 등)을 중심으로만 관심 있어 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세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위에 오신 하나님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에 대해 대언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왜곡을 초래한다. 자신에게 신비한 능력을 주는 대상으로만 혹은 자신이 공을 들이면 그만큼 보상을 해주는 존재로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위험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그런 것-하나님의 힘을 내 삶에 끌여들여(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적인 신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삶이란 무엇이었는가? 바로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갔던 삶이었다. 이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셔야 하셨다.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와 같은 수준의 삶을 살아낼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순교와 같은 고도의 헌신이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는 연습과 그 삶으로의 동참은 언제나 요구된다. 만일 우리가 마음에 품고 원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삶과 다른 길이 하나님께로부터 제시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학교 1학년때부터 길게는 30대 초중반의 나이까지 유난히 긴 Transition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앞날에 대해 세상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과 길로의 부름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기억하면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