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네마QT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하다. 영화 존큐를 보고나서

 

 

 

아버지의 사랑 , 존 큐 (JOHN Q.)

 

 

 

 

 

 

 

 

 

 

 

 

 

영화시작 도입부에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며 도로를 질주하는 승용차 한 대가 트럭을 추월하다
반대편 트럭에 부딪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제철공장 근로자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상한 남편이자 다정한 아버지인 존 큐.

어느 날 아들 마이크가 야구시합 도중 쓰러지고, 이송된 병원에서 심장에 문제가 생겨

당장 이식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지 모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막대한 수술비 부담과 심장이식 대기자 명단에 오르는 난관에 부닥친다.
아들 마이크의 병은 심장이 보통 사람보다 세배나 커지면서 혈압이 떨어지고

결국에는 죽고 마는 희귀병이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곧 죽게 되지만 수술비용만 25만 달러다.

그리고 수술대기자에 올려놓으려면 당장 수술비용의 30%를 병원에 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자동차는 압류 당했고 통장에는 불과 1000불 밖에 없다.

게다가 싸구려 보험을 든 탓에 2만 불 밖에는 지원받을 수 없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캄캄한 상황 뿐이다.

더욱이 돈이 없는 것을 안 심장 전문의와 병원은 퇴원할 것을 종용하고, 아내는 그에게 무엇이라도 할 것을 요구한다.

 아무리 병원 측에 사정을 해도 들어주지 않고, 퇴원하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병원은 강제 퇴원 조치하려 한다.
아버지 존 큐에게는 달리 선택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 수단으로 응급실에서 몇몇 사람들을 붙잡아 놓고 인질극을 벌인다.

 요구 사항은 단지 자신의 아들 이름을 수술 대기자 명단에 올려달라는 것.

하지만 병원 측과 경찰은 이를 묵살하고 존 큐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더 이상 희망은 없고 죽는 것만 남아 있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인질극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경찰이 설치한 폐쇄 회로를 통해 응급실 안에서

나누는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가 TV로 생중계 된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아들 마이크.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한다.

 

 

 

 

 

 

 

 

 

“넌 절대 죽지 않아.”
“어떻게 아세요.”
“너 없이 무슨 행복이 있겠니? 네가 없는 세상은 없어.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 알지? 얼마나 사랑스러워하는지도.”
“알아요.”
“그냥 네가 알았으면 해서, 잊어버리지 말라고…”

 

살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간과하고 망각하는 게 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고,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산다.

하나님은 우리 없이는 절대 행복하지 않으시다는 것을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이다.

하지만 스바냐 선지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징벌을 받고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던 스바냐 선지자는 말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다.
아니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사실조차 망각한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찰은 존 큐를 저격하는 것으로 인질극 사태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들 마이크의 상태도 악화되고 당장 새 심장 없이는 아들이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자 아버지는 의사에게 자신의 심장을 꺼내어 아이에게 줄 것을 요청한다.

그것은 자신이 죽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에겐 자살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자살은 안된다고,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면한다.

그런 그들을 향해 존 큐는 이렇게 외친다.
“난 절대로 못 받아들여! 절대로 안돼! 난 거부한다.”
그의 절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외침으로 들려온다.

하나님도 존 큐처럼 이 땅에 인간으로 성육신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것은 우리들이 이대로 살다가 죽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난 절대로 못 받아들여!”라고 외치시면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가슴에서 심장을 꺼내게 하신 것이다.
“난 절대 못 받아들여!”라며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

그보다 더 큰 고통으로 서 계신 하나님 아버지…

그것만으로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희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영화는 자신을 죽이려는 순간에 마이크와 혈액형 등 조건이 같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은 한 여인이 나타나고 심장은 무사히 마이크에게 이식된다.

다시 건강을 되찾은 아들 마이크가 아버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론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인질범이기에 법적인 책임을 받기 위해 차를 타고 떠나는 아버지에게 아들 마이크가 말한다.

“Dad, Thank you”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꼭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무언가를 바치고, 드리는 대가를 원하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에 오해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 “Thank you” 라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마이크가 보여준 것처럼 건강하고 밝게 잘 살면 된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다.

시편 50편에 ‘하나님은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오해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시 50:22-23

 


감사하는 것,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하나님은 충분하시다.

 

 

 

 

 

 

출처: 오륜교회 그레이스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