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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트리]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케냐 어린이를 위한 '브러시 위드 호프' 프로젝트

 

케냐 마사이족 어린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붓을 쥐고 '희망'을 그렸다

언제 처음, 예술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름다운 작품에는 분명 보는 이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글이나 음악처럼 색과 무늬가 말을 걸어왔고, 그렇게 마음에 찾아온 그림을 좋아하다가 깊이 사랑하게 되었으며, 결국엔 직접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삶에 들어온 그림은 말로 차마 다 전활 수 없는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게 해 주었다. 말보다 더 깊은속 이야기를 꺼내고,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게 했다. 때로 문화와 인종, 언어나 연령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기도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도 동물 그림 하나, 사람 얼굴 하나면 아이들과 친구가 되기 얼마나 좋은가. 때로는 어떤 무늬만으로도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꿈

2007년, 처음으로 케냐에 갔을 때, 그곳에서 아프리카 아이들을 처음 만났다. 당시 방문한 곳은 나이로비에 위치한 키베라로 에이즈 감염 비율이 높은 슬럼가였는데, 아프리카 자체에 대한 편견과 현지 상황에 대한 두려움, 미숙함이 불러온 오만함 때문에 시행착오를 피할길이 없었다. 어리석은 시선을 벗은 후 볼 수 있었던 아이들의 속마음에는 알록달록 예쁜 색을 보고 만지고 칠하고, 갖고 싶어 하는 아이다운 바람이 있었다. 아이를 아이답게 하고, 훗날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도록 도와줄 수 있는 생명력 있는 힘. 생존 이상의 인생을 소망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한 마음. 그리고 이것이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근력이 된다.

그리고 7년 만인 지난 7월 26일​, 엠트리(대표 최영환)와 함께 다시 케냐를 찾았다. 미술팀에 소속되어 브러시위드 호프(Brush with Hope)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엠트리는 '겨자씨나무(Mustard Tree)'라는 이름의 비영리회사로 뉴욕 맨하탄을 본거지로 두고 있다.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다양한 분야의 청년들을 네트워킹해 예술가, 정책가, 활동가로서 협업하게 하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NGO로, 올해에는 케냐에서 건축, 미술, 패션 영역에 걸쳐 총 3주, 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축팀은 현지 공법을 활용해 흙집을 완성했으며, 미술팀은 현지 학교와 연계해 미술수업과 놀이, 페스티벌을, 패션팀은 아프리카 아이들 안에 심어져 있는 패션감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 디자인, 염색 등 다양한 방식의 실기 수업을 진행하였다.

엔도이뇨 엔케르에서 만난 하늘 아이들

나이로비에서 차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마사이마을, 카지아도는 한국인 마사이 대추장으로 알려진 안찬호 선교사님의 사역지이기도 하다.

 마사이 부족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믿는다. 그만큼 하늘이 가깝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에도 하늘이 맑아 구름이 산과 언덕에 닿을 듯이 가까운 날이 많았다. 미술팀의 프로젝트는 '엔도이뇨 엔케르(작은 언덕과 양)'지역의 현지 학교의 교실과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붓을 만져본 아이들. 아이들이 붓과 친해질 수 있도록 붓을 만지고, 냄새를 맡아보고 온몸으로 느끼게 했다. 아이들은 붓으로 손과 코와 귀를 간질이고, 마사이 막대처럼 휘둘렀다. 자기 붓에 "양, 사자, 망고나무나 마사이모란(전사)" 같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물감을 만지고 섞으며 느껴보도록 하던 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일었다. 아이들은 물감을 관찰하고 만져보고, 섞고 만지면서 얼굴과 손과 발에 바르고 종이 위에 뿌렸다.

실제로 아이들 안에는 한 번의 교육이나 경험 없이도 반짝이며 자라나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전기 없는 낮과 밤 해와 달, 별이 뜨고 지는 온전한 밤하늘을 바라보았을 눈. 계절이 바뀌는 언덕마다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색의 변화를 만지며 느꼈을 마사이 아이들이 그려낸 색은 아름다움 이상의 아름다움이다.

 

희망이 담겨 있는 아이들의 '붓'

분명 아이들 속에 잠자고 있던 예술가가 깨어나는 순간이 있었다. 붓을 잡은 아이들 마음의 잔근육이 조금 팽팽해졌을 그 순간, 그 누구보다 선생님들의 마음의 근육이 사랑으로 탄탄해졌다. 아이들을 도와서 희망을 주겠다던 의지를 버리고, 아이들 자체를 바라봤을 때, 우리 안에 희망이 생겼다. 아이들 안에는 이미(하나님이 만드신) 온전한 영혼이 자라고 있었다! 착한 마음이나 선한 동기보다 더 확실한 것은 사랑이다.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주고 싶어 따지던 효율과 효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하늘에서 온 아이들 각자를 위해 준비된 사랑 그대로 사랑하는 것. 예술이 힘을 잃어 삶을 바꾸지 못하는 순간에도, 착한 동기가 마르는 때에도 그 사랑만은 절대 철회되지도, 실패하지도 않는다.

사랑이 만든 변화, 새로운 꿈

숙소 뒷마당에는 건기에도 의아할 만큼 싱싱한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꽃은 활짝 피었다. 겨울처럼 메마르고, 아무 변화 없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변화계획)은 지체되는 법이 없는 것 같다. 그 선함을 신뢰하며, 겸손과 용기로 발을 뗄 때 우리 내면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일어난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에게도 새로운 꿈이 생겼다.

 현재 엠트리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참여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작업을 더해 전시회를 여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꿈꾼다. 그 꿈의 씨앗이 엔도이뇨 엔케르에 변화를 가져와 필요한 우물과 식수로 자라나는 것, 메마른 땅에 샘물이 나서 함께 목마르지 않게 되는 변화를 보기까지 함께 '동행하는 꿈'이다.

박정현

'아름다운 것을 퍼뜨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 '이수(Yisu) 소셜 아티스트이자 북스포키르기즈스탄 공동대표. 그림 작업으로 전시, 음반, 교육, 동화책 및 패션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고 있다.(www.oeoeymtumbl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