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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무브먼트

 

 

 

 

1. 대안: 왜 다니엘인가?

우리는 이 무브먼트의 명칭을 정하면서 다니엘을 떠올렸다. 무브먼트를 시작할 때는 그것을 구체화해줄 수 있는 롤 모델이 필요했고, 그 롤 모델은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되어야했다. 그러한 대상 혹은 인물은 어떤 존재일까?

그는 세상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바벨론 제국의 복판에서 분리되지 않으나 구별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바벨론의 학문을 배웠고 성실하게 임했다. 그 숙련도는 뛰어났다. 비록 세상의 학문이었지만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또 이름을 바벨론식으로 바꾸었다. 제도적인 요청에 의해 그런 것이지만 신앙적인 의미를 담고있던 고유의 히브리식 이름을 바꿔야했다. 이름을 바꾸기를 원치않았겠지만 세상과 담을 쌓는 식의 근본적인 거부는 하지 않았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신앙적으로 성실하면 교회 안에만 머무르려하고 세상과는 분리되어 있는 지체들이 많다. 세상과는 잘 교류하지 않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 마음이 맞는 지체들과만 지내려고하는 때가 많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살아가야 할 무대는 세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도 하지만 또한 세상으로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이기도 하다.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세상과 분리되지 말아야하는 것이다.

한편 다니엘은 세상 속에서 유연하게 살아갔지만 신앙적으로 분명한 선을 지키는 의식이 있었다. 그는 왕이 주는 술과 음식을 거부했다.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왕을 신과 같은 존재로 섬기는 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왕이 주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왕을 신으로서 인정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타협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왕의 술과 음식을 거부했다. 당시 왕이 주는 것을 거부하는 자는 죽음에 처하게 되어 있었다. 막대한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니엘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술과 음식을 주는 관원까지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게되는 어려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다니엘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신앙을 지킨다. 자신의 신앙 때문에 타인이 피해를 보게된다면, 그것은 덕이 되지 못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왕의 술과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신앙적인 결단을 지킨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 일 가운데 간섭하실거라는 믿음이었다. 다니엘은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다. 그 결과, 놀라운이 이어졌다. 왕의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고 채식만을 했지만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변화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담당했던 관원도 처벌받지 않고 무사했다. 무엇보다 이 시험과 싸움과 부딪혀 승리한 일을 계기로 그 이후로도 이 신앙적 결단을 지켜나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던 결과가 중요하다.

오늘 세상 속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신앙을 가지고서도 우리의 생사여탈권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선배, 지도교수, 직장 상사, 거래처, 바이어를 비롯해 지금의 내 앞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의 말과 요구에 크리스천의 생사여탈권은 휘둘리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실 것을 기대하지 못하고 힘없이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구별되어 살아야한다.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구별되어 살기위해서는 다니엘이 경험했던 것처럼 세상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롤 모델 다니엘이 걸어갔던 길을 뒤따라가기 원하는 것이다.

세상과 분리되지 않지만, 세상과 구별되어 사는 삶을 위해 이처럼 다니엘은 우리의 대안이 되었다.

 

 

 

 

2. 공중의 권세 - 술, sex, 거짓

그렇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놓고 신앙적인 결단을 펼칠 것인가가 중요했다. 물론 세상이라는 거대한 대상과 싸워야하는 것은 맞는데, 구체적인 표적이 있어야했다. 표적을 정했을 때, 응집력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술, sex, 거짓으로 많은 영혼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젊은이들에게도 큰 유혹으로 다가온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하는 것은 바로 술마시기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으로 가는 버스의 트렁크에는 소주가 궤짝채 실린다. 대한민국의 성인식은 술로 시작된다. 이런 부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술문화는 건전하지 않다. 과음을 유도하고, 만취를 덕으로 여긴다. 대학교에서 직장사회로 갈수록 이러한 술문화는 더욱 정도를 심화해간다. 결국 술로 시작된 사회는 술로 망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바벨론에서 왕이 주는 술을 마시는 것처럼 자신의 신앙을 의미없게 만들게 된다. 그래서 다니엘 무브먼트의 첫번째 스피릿은 '나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가 되었다.

2003년 혼전동거를 다룬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이후 혼전동거와 원나잇 스탠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 대중매체에서 그려지고 있다. 결혼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성을 나누는 일이 일반적이 되면서 젊은이들의 성의식도 봇물처럼 개방적이 되어가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대학교 4학년을 마칠때까지 전체의 50% 이상의 학생들이 성경험을 한다고 발표되기도 했다. 2명중 1명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성은 쾌락적인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개방적인 성문화 속에서 우리가 혼전순결을 지키고, 거룩한 성문화를 만들어가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은 결혼관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독처하는 존재로 지으시지 않고, 가정을 이루어 서로를 보완하는 공동체가 되게하셨다. 그리고 이 공동체를 이루는 수단으로써 성을 허락하셨는데, 성은 반드시 결혼관계 안에서만 누리고 사용되어져야하는 특징이 있었다. 간음에 대해서 특별히 경계했던 율법의 내용을 참고할 때, 성을 결혼관계 외적으로 남용하면서 생기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정 파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문란한 성생활 가운데 노출되는 문화 속에 있는 미국의 경우, 현재 온전한 가정의 비율이 극히 낮은 상태에 있다. 향후 결혼 관계속에서 성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20대때부터 성에 대한 올바른 의식과 구별된 지킴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다니엘 무브먼트의 두번째 스피릿은 '나는 거룩한 성을 지키겠습니다.'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사회에는 거짓이 만연하다. 다양한 종류의 거짓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살기위해 펴는 거짓이 가장 많을 것이다. 캠퍼스에도 거짓이 있다. 표절(레포트 베껴쓰기)와 대리출석 그리고 컨닝이 그것이다. 이러한 거짓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내가 살기위해 남을 밟고 일어서야하는 세상의 경쟁원리에 근거한다. 내가 살기위해서는 거짓도 합리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정신은 이러한 세상의 원리와는 정반대된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다른 이를 살리기위해 자신이 죽는 원리를 보여준다. 이것은 세상의 원리로 볼 때는 손해이며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의 방법으로는 사람을 살릴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방법으로만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우리는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걸어야할 길은 손해를 감수하는 길이며,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방식의 삶이다. 캠퍼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이들이 자신을 위해 거짓을 일삼을 때, 나도 따라하지 않으면 손해가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다른 길로 가야한다. 적어도 다같이 밟고 죽이는 일에 동참하지 말아야한다. 거짓을 일삼는 일에 양심을 팔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 무브먼트의 세번째 스피릿은 '나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습니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