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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QT

영화 밀양, 다양한 시각의 리뷰

 

 

 

영화 '밀양'

 

 

하나님의 손길아래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그를 다 이해할 수도 없는 인간의 실존 영화 '밀양'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다른 모든 도움이 헛되고 절박하여 하나님께 다가가면 무엇을 얻는가?

면전에서 쾅 하고 닫히는 문

 

 

 

 

 

 

이것은 <순전한 기독교>, <나니아 연대기> 등으로 잘 알려진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C.S. 루이스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고통의 문제>에서

우리 삶이 고통으로 점철된다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할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아내를 암으로 잃은 뒤에 그 자신이 하나님을 잔인하고 비열한 신이 아닌가 의심하며 위와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이창동 감독이 우리 앞에 내놓은 영화<밀양>에는 신애라는 여자가 있다.

 

 

 

 

 

 

 

 

 

남편과 사별한 뒤 아들과 함께 새롭게 삶을 시작하려고 밀양에 내려간 신애.

하지만 얼마 못 가 그녀는 아들마저 잃게 된다.

 

 

신애가 돈이 좀 있는 척 했던 걸 그대로 믿은 아들의 학원 원장이 신애의 재산을 노리고 아이를 납치한 뒤 살해한 것이다.

삶의 이유를 모조리 빼앗긴 듯한 그녀에게 종교는 새 희망으로 다가온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매일 사랑하고 사랑 받는 걸 느끼게 되고 상처가 치유되며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할 마음까지 들게 된 것이다.

그녀는 살인범에게 자신이 그를 용서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전해주기 위해 직접 교도소로 찾아간다.

그러나 뜻밖에도 교도소 안에서 복음을 접한 살인범은,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 받았으며 더욱이 신애가 하나님을 만나도록 그동안 기도해왔노라고 말한다.

 

신애는 희망이 없던 자신에게 찾아와 참사랑을 알게 해준 하나님 앞에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는 모습을

내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짓궂게도 하나님은 그녀에게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아가셨다.

신애는 그런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다른 이들이 예배 드리는 걸 방해하고, 장로를 유혹하기도 하며, 신애를 위해 기도하려고 모인 집의 유리창을 깬다.

영화를 통해 신애가 하나님과 싸우는 모습을 보는 기독교인들은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거기서 내 모습이 보인다.

 

 

 

 

 

 

 

 

 

 

 

하나님을 만난 후로 우리는 전에 사랑하지 못하던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게 되며

욕심 내던 세상 것들에 흥미를 잃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보다는 그렇게 변화된 내 모습을 더 기뻐하고 자랑하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나님을 믿은 이후로 내가 더 선해지고 강해졌다고 생각하며

어느새 하나님이 아닌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삶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C.S.루이스나 신애가 그랬듯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한다. 그리고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따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나' 라는 것

 나는 아직도 '나'를 내 주인 삼아 살고 있다는 것을.

 

 

 

 

 

 

 

자살 기도 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온 신애는 곧장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간다.

 

하필 그곳은 살인범의 딸이 일하는 곳이었고, 그 아이가 자신의 머리를 잘라 주자 신애는 참지 못하고

한쪽 머리만 자른 채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리고 하늘을 노려본다.

하나님은 한시도 신애를 가만 두지 않고 집요하게 쫓아다니시는 듯하지만

신애는 끝내 그 앞에 항복하지도 체념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자기 머리를 자른다.

영화는 신애가 머리를 자르고 있는 마당 한 구석에 은밀한 햇살 한 조각이 내려앉아 있는 모습을 비추며 끝난다.

이 영화의 결말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마치 우리가 끊임없이 나를 내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고요하고 은밀하게 우리를 만지시며 포기하지 않고 그 분이 원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만들어가실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출처: 오륜교회 그레이스저널